초등 자녀와 삼국지 즐기기 2편: 만화 다음은 왜 ’84부작 삼국지’일까?!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앞서 제가 남겼던 <전략 삼국지 추억이야기>가 아마도 익숙 하실텐데요. 이번엔 그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84부작 삼국지에요. 지난 포스팅에서 7~8세 아이들에게 ‘만화 삼국지’로 입문시키는 노하우를 공유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그보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합니다. 만화로 캐릭터와 친해졌다면, 이제는 그들이 살아 숨 쉬는 대서사시를 보여줄 차례죠.

제가 중학생 시절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며 밤을 지새우고, 코에이 삼국지 게임으로 천하통일을 꿈꾸던 시절, 제 가슴에 가장 깊은 낙인을 찍었던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1994년 제작된 중국 CCTV의 ’84부작 삼국지’ 입니다. 최근 제작된 ‘신삼국’도 훌륭하지만, 올드 유저들에게 이 84부작은 기독교로 치면 ‘성경(?)’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왜 이 오래된 드라마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 그리고 아빠의 팬심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수했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 CG가 없던 시대, ‘진짜’가 주는 압도적 무게감
요즘 아이들은 화려한 CG와 넷플릭스의 고퀄리티 영상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84부작 삼국지에는 요즘 기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힘’ 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수만 명의 인민해방군이 실제 엑스트라로 동원되었다고 하는데요 . 적벽대전의 불길, 관도대전의 기마대 진격 장면을 보면 CG로는 느낄 수 없는 흙먼지와 열기가 화면을 뚫고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설명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얘들아, 저기 달리는 말들이 다 진짜란다. 수천 명의 군인이 실제로 창을 들고 서 있는 거야. 이게 진짜 전쟁의 기운이지.”
아이들은 처음엔 촌스러운 화질에 갸우뚱하다가도, 어느새 수만 명의 군대가 부딪히는 장면에 압도되어 입을 벌리고 보게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좋아하는 제 아이들도 딱 좋아할만한 작품이죠 🙂
2. ‘박제’하고 싶은 완벽한 캐스팅: 제갈량과 조조
삼국지 매니아들 사이에서 84부작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단연 캐스팅입니다.
- 당국강의 제갈량: 부채를 살랑거리며 천하를 논하는 그의 모습은 ‘지혜’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에게 “저분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제갈공명이란다”라고 소개하면, 아이들은 드라마 속 제갈량의 눈빛만으로도 그 무게를 느낍니다.
- 포국안의 조조: 간사하면서도 영웅적인 조조의 이중성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배우가 있을까요? 물론 천첸빈 배우의 조조 연기와, 위허웨이의 조조연기도 훌륭하지만요.
만화책에서 보던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지적 자극을 줍니다. 7살 둘째는 제갈량의 출사표 장면에서 아빠가 왜 눈시울을 붉히는지 궁금해하며 자연스럽게 인물의 충성심과 고뇌를 배우게 됩니다.

3. 원작에 가장 충실한 ‘삼국지연의’의 교과서
이문열 삼국지나 정사 삼국지를 섭렵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왜곡된 정보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84부작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가장 충실하게 고증한 작품입니다.
도원결의부터 추풍오장원까지, 드라마의 호흡은 다소 느릴 수 있지만 그만큼 서사가 탄탄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편씩 끊어 보며 “저기서 관우가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혹은 “장비가 왜 화가 났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기 가장 좋은 교재가 아닐까 해요!
4. 7~8세 아이들과 ’84부작’ 즐기는 아빠만의 꿀팁
사실 84부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무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이라이트 정주행법’을 택했는데요. 이은휴의 ‘역사를 볶는 채널‘ 유튜브에서 전체는 아니지만 초반부 몇 에피소드라도 볼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완전 전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분 J.C Park님의 유튜브에도 꽤 많은 영상이 있네요. 저처럼 매니아신가봅니다. 삼국지의 대표적인 에피소드 몇개만 꼽아볼까요?
- 도원결의와 황건적의 난: 세 영웅이 만나는 설렘을 공유합니다.
- 삼고초려: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가는 유비의 정성을 강조하며 ‘겸손’을 가르칩니다.
- 적벽대전: 화려한 수상전과 제갈량의 동남풍 에피소드로 흥미를 극대화합니다.
- 관우의 오관참육장: ‘의리’라는 가치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슬쩍 코에이 삼국지 게임의 능력치 표를 보여주거나, 신삼국(2010)의 같은 장면과 비교해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옛날 관우 할아버지랑 요즘 관우 할아버지 중 누가 더 멋있어?”라는 질문 하나로 대화는 끊이지 않을듯요~^^
5. 아빠의 취미가 아이의 인문학이 되는 순간
삼국지를 좋아하는 아빠로서 제 꿈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 삼국지의 인물들을 떠올리길 바랄 뿐입니다.

(출처: 알라딘)
유비의 포용력, 조조의 결단력, 제갈량의 지혜를 84부작이라는 클래식한 영상을 통해 뇌리에 남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생각 주머니’라고 믿습니다.
84부작 삼국지는 단순한 옛날 드라마가 아닙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영웅들을 아들에게 소개하는 ‘가교’이며, 시대를 초월한 인간 군상의 기록입니다. 이번 주말, 오랜만에 삼국지에 푹 빠져봐야겠어요. 여러분들도 먼지 쌓인 DVD를 꺼내거나 유튜브의 고화질 복원판을 아이와 함께 틀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